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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2-11-27 00:00
빈 의자의 꿈
 글쓴이 :
조회 : 6,052   추천 : 0  

<경인일보 2002. 10. 3일자에서 퍼온 글>

빈 의자의 꿈

2002-10-02[오후 8:38:34]

'지금 어드메쯤/아침을 몰고 오는 분이 계시옵니다/그분을 위하여/묵은 이 의자를 비워 드리지요//지금 어드메쯤/아침을 몰고 오는 어린 분이 계시옵니다/그분을 위하여/묵은 의자를 비워 드리겠어요//먼 옛날 어느 분이/내게 물려주듯이//지금 어드메쯤/아침을 몰고 오는 어린 분이 계시옵니다/그분을 위하여/묵은 의자를 비워 드리겠습니다.'

원로시인 조병화 시인의 작품 '의자·7'의 전문이다.

새 시대 새 역사의 세대교체를 염원하는 이 작품은 반복되는 문장을 추려내면 불과 몇 자 안 되는 단어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나 새로운 시대와 새로운 세대를 위하여 자신의 사회적 지위와 직책까지 모두 비워주겠다는 겸허한 마음을 읽어낼 수 있다.

행사 관계로 며칠 전에 전화를 드렸더니 “운동할 수 없어” 하시는데 왠지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쩌렁쩌렁한 음성으로 시원스레 “알았어” 하시더니 그새에 건강에 이상이 오신 것이다.

2002년 9월28일 늦은 6시에 '경기도 문인'들은 그분의 생가 '편운재 문학관'에서 모이기로 한 것이다. 안성을 중심으로 멀리 포천, 연천, 구리, 광주, 성남, 안양과 평택, 화성, 오산, 용인 등에서 활동하는 시인들이 모여 시 낭송회를 하기로 몇 달 전부터 계획을 세웠던 것이다.

행사를 준비하는 입장이다 보니 마음만 부산스러웠다. 천지사방으로 흩어진 회원들의 원고 모으기가 쉽지는 않았다. 다들 바쁘다는 핑계뿐이고 나는 그 바람에 한가한 사람이 되었다. 사실 시 낭송으로 무슨 대단한 것을 얻겠는가. 차라리 그 시간에 작품 한 편을 다듬는 일이 아마도 실속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 혼자 살아가는 세상이 아니다.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에서 내 욕심만 내세운다면 세상은 어찌 되겠는가. 먼 훗날을 위해 오늘을 조금씩 나누어 예비하는 것이다. 언젠가 물려줄 꿈의 의자를 위해 밤잠을 설치며 준비하는 것이다. 사실 따지고 보면 우리들 삶은 다 남의 덕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아무리 배가 고파도 제 살 뜯어먹을 수는 없는 것이다. 가끔은 타인의 가슴을 뎁혀주는 사랑으로 세상살이는 부드럽게 넘어갈 수 있는 것이다.

조병화 시인의 건강이 좋지 않으시기 때문에 주인 없는 집에서 객들이 여는 잔치가 되었다.

'편운재 문학관'은 평생을 시업으로 일관하신 대 시인의 문단 이력으로 가득 차 있다. 그분의 흔적이 어느 곳으로 눈을 돌리든지 보인다. 마을 사람들도 조병화 시인과 '편운재 문학관'은 그들이 사랑하고 아끼는 마을의 보배이다. 대문 앞에 '조병화 박사 송덕비'까지 세워 받들고 있는 어른이다.

홍승주, 최광호 시인의 문학 강연으로 막은 열렸다.

경기도 31개 시·군에서 참여한 시인들도 흥분된 모습이다. 대 시인의 문학 자료들이 있는 문학관 내에서 시 낭송하는 영광된 자리이다.

해마다 전국 규모의 꽃잔치를 안성에서 열고 있는 김유신 시인부터 낭송을 시작했다. 장미남, 정인자, 김석철, 공문숙, 김영자, 김진원, 노내현, 박청자, 박찬수, 솔바람, 양호, 류승권, 이광구, 이윤옥, 한새빛 시인들이 스스로 분위기를 맞추어가며 시의 향기를 뿜어냈다.

1부 순서가 끝난 후 낯설게 느꼈던 퍼포먼스가 펼쳐졌다. 김석환과 최병두의 '어머니를 주제로 한 삶의 순환'이라는 퍼포먼스이다. 그러나 그들이 가지고 온 소재가 우리에게 너무나 친근한 것들이었다. 꽃고무신, 노리개, 하모니카 등 어린 시절로 되돌아가게 하였다. 특히 조병화 시인의 작품에서 보았던 풍경들이 실감나게 그려지고 있었다.

하얀 광목 위에 먹으로 그려내는 어머니의 초상. 보따리에 담긴 유품은 바로 우리들 어머니의 지난한 삶의 모습 그대로를 보여주고 있다. 낯설게 느껴졌던 퍼포먼스가 친근하게 가슴으로 파고들었다.

모두들 바쁘게 살아가는 세상살이이다. 자신에게 이익이 없으면 누구나 나몰라라 방관하는 시대이다. 그런데도 안성 문인들은 안성을 방문한 타 지역 문인들이 불편함이 없도록 세세한 부분까지 친절하게 배려했다. 그 모습에서 역시 '문학의 고향 안성'이라는 이름이 결코 허명이 아님을 느낄 수 있었다. 자신들의 큰 행사를 치르고 나서 많은 회원들이 피곤함을 무릅쓰고 '편운재 문학관'으로 달려온 것이다.

그들의 정성으로 행사는 아무런 불편 없이 끝마칠 수 있었다. 모두들 조병화 시인의 쾌유를 빌며 '편운재 문학관'을 나올 수 있었다. 가슴에 조병화 시인으로부터 물려받은 '꿈'의 씨앗들을 품고.
<이원규 (경기도문인협회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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